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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직딩 이대리입니다. 곧 12월 20일에 '노량 : 죽음의 바다'가 개봉을 하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을 뽑으라고 하면 많은 훌륭하신분들을 말하지만, 항상 나오는 분의 이름은 이순신장군님입니다. 그분의 마지막 전쟁의 이야기 '노량 : 죽음의 바다'가 어떻게 내용을 담아냈을지 궁금합니다. 이번 포스팅은 영화의 줄거리라기 보다는 역사내용을 바탕으로 포스팅해보았습니다.

 

노량 죽음의 바다 : 등장인물

이번 영화의 이순신 역할은 김윤석배우님이 맡으셨고, 시마즈 요시히로역의 백윤식배우님, 명나라 장수의 진린은 정재영 배우님, 고니시유키나가역할은 이무생배우님이 맡으셨습니다. 이순신 영화 시리즈에서는 이순신 배우의 역할을 매번 교체를 했는데요. 김윤석배우님이 연기하시는 이순신 장군님은 어떠할지 기대가 됩니다.

 

 

시대적 상황(노량해전 전)

1. 정유재란과 명나라의 원군 파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나라에서는 다시 한번 조선에 원군(10만명)을 파병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명나라 장수 진린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가 이끄는 2만명의 수군도 포함이 되어있었습니다. 

 

2. 명나라의 국고와 전략

명나라는 내부의 반란과 특히, 여진족을 상대하느라 국고가 메말라 가며 더이상 조선을 위해 군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먼저 약속을 깨고 정유재란을 일으키자 명나라는 원군을 파병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그러한 상황속에서 명나라의 전략은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는 것이었습니다.

 

3. 사로병진책의 계획과 실패

일본군이 남쪽에 왜성을 쌓으며 장기간 주둔할 것으로 보이자, 명군은 빨리 전쟁을 끝내기 위해 선제공격을 계획하였습니다. 그 계획은 "사로병진책"이었으며, 총 13만명의 조명연합군을 4개 부대로 쪼개어 네 방향으로 동시에 적을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4.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과 일본군의 철수

사로병진책이 한창일때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병사를 하게 됩니다. 히데요시는 마지막유언으로 조선에 파견된 일본군을 모두 철군시키라고 명합니다. 사로병진책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본군을 철수하는데 문제가 없었으나, 순천왜성에 주둔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순신장군과 명나라 진린장군의 포위에 의해 철수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5.시마즈군의 투입과 노량해전 

고니시유키나가는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명나라 장수 진린에게 뇌물을 제공했습니다. 뇌물을 받은 진린은 포위를 풀려 하였지만, 이순신장군은 그에게 반대했습니다. 진린은 이순신을 위협하면서도, 고니시에게는 배한척만 나갈 수 있게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이배는 곧장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가서 진린과 이순신을 공격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시마즈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순신은 긴급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이순신은 포위를 풀고, 대신 시마즈 지원군을 공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진린도 고니시와는 협정을 맺었지만, 시마즈와는 맺지 않았기 때문에 이 방향으로 작전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역사(노량해전) 줄거리 요약

1598년 11월 19일, 아직 새벽이 깊었던 어둠 속에서 조선함대 80척과 명나라 함대 200척, 그리고 일본함대 500척이 충돌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람이 조명연합군 쪽에서 일본함대 쪽으로 불어, 대포 등의 화공을 거침없이 쏟아부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군의 특기인 백병전을 시도하기도 전에 큰 타격을 일본군은 남해도 쪽으로 퇴각하려고 했습니다.

조명연합군 매복지역과 시마즈군 이동경로

하지만 일본군의 퇴각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퇴각하는 일본군의 눈앞에는 어둠이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의 캄캄한 어둠속에서 바다가 아닌 관음포쪽으로 길을 잘못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서둘러 배를 돌려 나오려고 했지만, 이미 입구엔 조명연합군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입구에 조명연합군이 대기하고 있자, 궁지에 몰린 일본군은 마지막으로 죽기살기로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이때 전투가 한창인 가운데 이순신 장군이 총탄을 맞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모두가 알고 있는 그말 "전투가 한창이니, 나의 죽음을 전하지 말라"라는 말을 남기면서 전사하게 됩니다.

결국 전투의 승리는 조명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일본군선 200여척을 격퇴하였고, 100여척을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조선군의 피해도 있었는데요. 약 800명이 전사하고, 명나라 장수 등자룡 전사 및 조선군 장수는 10명정도 전사하였습니다.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이순신장군이 전사하는 등의 피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위되었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틈을 타 퇴각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충무공 이순신)

우리가 알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의 시호는 전쟁이 끝난 후 바로 내려진 것이 아닙니다. 선조는 전쟁 중 나라를 구한 것은 직접 전쟁에 나가서 싸운 장수들이 아니라, 왕인 자신을 지키고 명나라에 도움을 청한 문신들에게 있다고 논리를 펼쳤습니다. 또한, 애초에 관료들이 올린 책봉 목록에는 선무 1등 공신에 이순신과 권율, 2등 공신에 원균을 올렸으나 선조는 원균을 1등공신에 올렸습니다.

 

선조의 이런판단에도 불구하고 인조 21년 이순신장군에게 충무라는 시호가 내려져 이순신 장군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이 됩니다.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장군의 업적과 전공을 기억하고 기록했기 때문에 결국 충무공의 시호는 당연하고 모두가 존경하는 인물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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